추사 김정희 제주 유배지와

시서화의 대가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으로 유배되었다.

예산에 있는 추오의 고택에서 묵었지만 제주로 유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주 3대 도성 중 하나였던 대정성 바로 옆에는 ‘추사기념관’이 있다.

나는 김정희의 생애와 학문, 예술세계를 기리는 기념관에서 공부했다.

추사(1786~1856)는 치열한 학술연구로 시대를 대표한 학자였다.

55세에 윤상도 형무소 사망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어 8년 3개월을 복역하였다.

그는 이곳에 살면서 부단한 노력과 성찰을 통해 ‘율법을 새롭게’ 하여 추사체를 완성하였다.

제자를 많이 길렀고 옥에 ​​갇힌 거지로 유명한 세한도를 그렸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서화가이자 학자인 추사 김정희가 유배되었다.

제주추관은 지하에 전시실이 있는 심플한 단층 건물이다.

제주도 망명의 시련을 이겨낸 예술혼 ‘세한’

눈 속에 푸르게 남아있는 소나무와 편백, 세한도(국보 제180호) 영인본

추사의 제자이자 통역사였던 이상이 그린 세한도 해설

추사 김선생 적려유허비(적려란이 유배되거나 유배된 곳으로, 그 사람의 옛 흔적을 밝히고 후세에 알리기 위해 세운 유허비)

유리안치가 된 강도순의 집

다도 명인인 선초의와 평생의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돼지우리와 화장실을 결합한 컨셉의 돗통시

안거리(주인이 살던 안채)


추사가 동네 젊은이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쳤던 외채 사랑채

고판(식자재와 가정용품을 보관하던 창고)


말방(연자방가)

추사 김정희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간략한 전시

추사 김정희 전신초상, 백스테이지, 대정성지

매화꽃이 한창입니다.

박사님도 방문했습니다. 추사기념관 근처 양원하.

남은 귤 따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인근 ‘냄비 굽는 마을’ 덕수리 불미공예

옹기를 굽는 마을 덕수리에는 온실이 사라지고 벽화의 흔적만 남아 있는데…

화순약수 앞의 온천수 화순금모래해변 근처 양네집

과거에는 샘물과 세탁용으로 사용되었으나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한 달 동안 손주들과 함께 제주에 살면서 매일 올레길을 완주하고,

그 사이에 나는 역사를 공부하고 박사를 방문했다. 양 문화.